사카키바라?
유우야는 신 옆에 앉아 그의 목에 손끝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맥박이 뛰지 않았다. 그는 출혈 부위가 어디인지 알기 위해 신의 어깨를 잡고 그의 몸을 일으켰다. 의식 없는 사람 특유의 무게가 손끝에 실렸다.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몰라. 심폐소생술을 하고 지혈을 하면, 그 생각을 단념시키기라도 하듯이 신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유우야가 눈을 깜빡였다. 입이 아니었다. 그의 목에 일자로 그어진 선명한 칼자국에서 피가 흘러내린 것이다.
이미 105호실에서 진동하던 피냄새에 후각이 마비된지 오래였지만, 지근거리에서 선혈이 고이자 코도 반응했다. 유우야는 신이 죽었다는 걸 깨달았다. 신의 어깨를 잡은 채 정지한 그의 눈동자가 돌아가 곁에 떨어진 나이프를 발견했다. 신은 이 방에 들어온 뒤, 누군가를 발견하고 미나모토 겐자부로를 욕실로 피신시킨 뒤 맞붙은 것이다. 그 결과는 참패였지만.
유우야는 느리게 신의 몸을 바닥에 도로 내려뒀다. 여기까지는 아주 기계적인 동작이었다. 스스로도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게 해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살리지 못한 환자를 부여잡고 흉부를 압박하거나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 만큼의 낭만주의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자기자신을 평가하기에는 그랬다. 그래서 전문인이라면 누구나 그러듯, 현장에서 봐온 다른 피해자들을 대할 때와 똑같이 이불 시트를 벗겨내 그의 몸 위에 덮었다. 사건 현장을 훼손하면 안 되지, 더불어 고인에 대한 당연한 예의이기도 하고.
그의 등 뒤에는 이쪽에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던 나리타와 차마 정면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겐자부로가 있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그는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대신에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사람들은 이런 순간에 동요하지 않는 사람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편이 낫겠지? 군용 나이프는 우선 회수했지만, 이 정도 실력으로 경찰을 정면에서 살해하는 건 훈련받은 용병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이 정도로 유효한 공격 수단을 옆에 버려두고 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람들 중 일부는 사카키바라 신이 경찰 공무원 자격으로 이곳에 탑승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의 죽음은 사람들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럼 괴한에게 습격당했다고 하되, 일격에 살해당했다는 말은 삼가자. 적어도 사람들을 둘러싼 공포는 섣불리 사람을 둘이나 살해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힘으로 제압하자고 생각하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 아, 옷에 피가 너무 많이 묻어버렸네. 이걸 보면 다들 놀랄 텐데. 하지만 당장 옷을 갈아입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건너편으로 가서 스마트 워치를 가져다대면 문이야 열리겠지만, 그러고 보니 문. 이곳 복도에 있을 때 나리타는 새롭게 지나가는 사람을 본 적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행이 105호 문고리의 핏자국을 발견한 뒤, 복도가 비어있던 공백 시간은 비상 사태로 모두가 소집되고 나서 다시 내려올 때까지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 사이 범인은 줄곧 105호에 있다가 나오려던 차에 급하게 건너편 방으로 이동했다는 게 된다. 누군가 보초를 섰다면. 유우야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죽었겠지. 신이 죽은 이유는 아마도 목격자를 처리하기 위해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
불안해하는 두 사람을 따라가던 유우야의 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나는 너희를 가엾이 여겨 인간의 문을 열어주는 손이로다.
유우야가 미간을 구겼다. 앞쪽으로 가는 두 인물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서 지을 수 있는 표정이기도 했다. 그는 이런 얼굴을 다른 사람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네기리 유우야는 집에 배달된 소포의 포장을 끌렀다가 안에서 세기의 금서를 발견한 오래 전의 기독교인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과학과 이성을 믿으며 법을 수호하는 이 나라의 경찰이었다. 그런 불결한 목소리따위에 현혹될까보냐. 그러나 유우야는 혼란스러웠다.
'사실 나는….'
동료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는 때로는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판단을 빠르게 하고 위험한 곳에 뛰어들었지만 매번 단 한 가지 가능성에 발목을 잡혔다. 그 한 마디만 들으면 될 것 같은데, 그 생각이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을 막지 못했다. 며칠 뒤, 깁스를 하고 나타난 츠즈노 하루나는 그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하네기리 경부. 현장에 나서는 이상, 저도 각오한 일인걸요. 그러니 그런 표정 하지 마세요. 내가 무슨 얼굴을 하고 있었지? 일본 정부는 경찰이 흉악범을 사살하는 걸 아예 막고 있지 않지만 경찰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도 피하고 싶어 했다. 복잡한 세력 갈등의 톱니바퀴에서 튀어나오곤 하는 작은 거스러미다. 그러나 유우야가 아주 그릇된 행동을 저지른 것도 아닌 까닭에 그가 한직으로 아예 추락하는 일도 없었다. 그건 유우야 역시 바란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예전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할걸.'
사카키바라 신은 그날의 하루나처럼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비난이 돌아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가지에서 자란 과실이 익으면 취하거라.
하지만, 왜 지금이어야 하지? 그날 조사를 위해 총을 반납하면서 그는 시간을 돌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경찰서에 찾아와서 목높아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 형편 좋은 특권이 주어진다는 건 정말 이상했다. 그럴 뿐더러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도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열매는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불쾌했다. 시체를 뚫고 솟아나 피를 마시고 맥동하는 흉측한 과실을 과연 열매라고 불러도 될까. 유우야는 자신을 농락하고 선장과 신을 죽인 범인을 당장이라도 벽에 밀어붙이고 나이프를 목에다 가져다 댄 채로 협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수족에는 범인이 없었다. 나이프에 묻은 신의 피도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유우야는 뒤늦게 자신이 화가 났는지 돌아보았다. 하지만 물 속이 보이지 않는 진흙탕에서 담갔던 손을 빼듯 마음을 되짚어보자 그게 아닌 듯 싶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의 감정을 깨달았다. 초라함이었다.
내가 물처럼 세상에 풀어진 시간을 되돌려주마.
그는 고장난 AI가 끝없이 출력하던 모독적인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검푸른 점이라고.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돌려 머나먼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했다. 그 사진 속에서 지구는 제대로 보이지 않은 티끌 만한 점으로 나왔다. 이게 지구를 찍은 사진이라는 설명을 듣지 않으면 아무도 이 보잘것 없는 흐릿한 사진을 보고 감동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칼 세이건은 말했다. 이곳에서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알고 우리가 들어봤으며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람이 살았노라고.
저 점의 한 영역의 주민들이 거의 분간할 수도 없는 다른 영역의 주민들에게 끝없이 저지르는 잔학행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얼마나 자주 불화를 일으키고 얼마나 간절히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며 얼마나 열렬히 증오하는지. 우리의 만용, 우리의 자만심, 우리가 우주 속의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대해 저 창백하게 빛나는 점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 행성은 사방을 뒤덮은 어두운 우주 속의 외로운 하나의 알갱이입니다. 멀리서 찍힌 이 사진만큼 인간의 자만이 어리석다는 걸 잘 보여주는 건 없을 겁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좀 더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죠.
유우야는 사람들의 애절한 사연에 눈물짓지는 않았지만 인류가 좀 더 현명하게 살아갔으면 했다. 어느 천문학자의 말은 그의 그런 의견과 제법 일치했다. 그래서 유우야는 화면 너머로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습격하던 수수께끼의 생명체들에게 감히 그 단어를 더럽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는 너희가 마음대로 설치고 다녀도 되는 장소가 아니야.
"……."
허나 이 또한 자만이다. 지금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칼자루를 쥐지 않으면 상대를 칠 수 없다. 그의 오만과 이상이 죽은 사람을 되살려주지는 않았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 하지만 엎어진 물을 그러모아 담을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잖아.
유우야는 열매를 주워 들었다. 피가 굳은 손 위로 기이한 빛깔로 빛나는 열매가 올라왔다. 그는 시선을 들었다. 옷장의 반만 젖혀진 문 끝으로 선장의 두 번 죽은 발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묵념하듯 눈을 감았다. 그러나 마음 깊이 그를 애도하기 위해 고개 숙인 건 아니었다.
나는 오늘 여기서 죄를 짓는 거야. 돕지 못한 사람을 추모하고 그 사람의 원한을 갚아주지는 못할 망정, 시신에서 자라는 피 묻은 열매를 삼킨다. 만일 정말 죽은 사람의 시계가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이 죄책감은 씻겨나가지 않을 거라는 묵직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도박을 하기 위해 프라이드를 꺾을 만큼은 사람을 위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였다.
'어차피 처음도 아니잖아.'
반듯한 이가 열매를 베어물었다.
* * *
본 적 없는 풍경이 마치 오래 전 목격한 재난을 떠올리듯 펼쳐지고 난 뒤, 그는 폭풍우 치는 곳에 던져진 듯 의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다. 코와 입에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는데 익사 직전처럼 숨이 막혀왔다. 그는 오만 곳에서 자신을 떠밀고 당기는 환상에 시달렸다. 그를 물 밖으로 잡아끈 건 들어본 적 있는 경보였다.
그는 2층의 라운지에 서있었다.
유우야는 현실을 검증할 새도 없이 고개를 돌려 미나모토 겐자부로 뒤에 서있는 자신의 동료 경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목을 매만지고 있었다. 유우야가 뗀 첫발은 균형을 잡지 못하는 사람처럼 비틀거렸지만 그 다음부터는 바르게 안착했다. 거기서 모자라 속도를 띠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신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유우야를 뭐라고 말릴 틈도 없이 그가 신의 어깨를 잡고 얼굴을 마주보았다.
"뭐…."
그러나 신의 눈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유우야의 모습은 느지막히 올라온 동료를 보는 게 아니라, 마치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홍채를 살피는 구급대원 같았다.
"야."
그가 신의 목에 손을 대기 전에, 신이 그를 밀어냈다. "떨어져." 그제서야 유우야는 정신이 들었다. 몇몇 사람들은 지직 소리를 내면서 켜진 TV에 정신이 팔렸지만, 겐자부로를 포함해서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이상행동을 하는 유우야를 주목하고 있던 것이다.
수상해 보이면 곤란해. 나는 경찰이니까. 그는 멋쩍은 웃음을 보이고는 상황에 집중하듯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유우야의 모든 감각은 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죽지 않았어. 정말 살아서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건 실로 값싼 장사가 아닐 수 없다. 진실로 그렇게 생각했다.